최악의 재난을 재구성하는 HBO 미드 체르노빌

 

요즘 드라마 이야기는 온통 <왕게임> 이야기뿐이다. 왕게임을 본 적이 없어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열광하는 팬들의 마음을 보면 시청자들을 화나게 했나 싶어 강 건너 불 보듯 지켜보고 있다. 근데 왕게임은 벌써 끝나잖아, 왕대는 끝날 생각도 없는데 혼자 생각하면서 하는 거야. 영화계에서는 엔드게임이, 방송계에서는 왕게임이 한 달 넘게 화제가 된 것 같다. 멀리서 보았을 뿐인데, 나는 시시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렇게 관심을 갖는 동안 괜찮은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밀려나 아쉬움이 남는 걸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왕게임>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화나게 하고 있는 동안 HBO는 정말 멋진 드라마를 공개했다. 그 파장을 예상하고 회심의 카드를 준비했을까.<왕게임> 때문에 화가 나거나, 나처럼 요즘 미국 드라마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린다면 그간의 설움을 한번에 만회해 줄 것이라고 장담하는 <체르노빌(Chernobyl)>을 보자. 개인적으로는 2016년 ‘더 나이트 ’를 봤을 때의 충격과 흥분에 버금가는 경험을 했다. 3회까지 나왔지만 5회까지 나왔고, 안타깝게도 나머지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강하게 강타하는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이 너무 장황했지만 <체르노빌>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의 내용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떤 사건인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1986년 원전 폭발사건에 관한 얘기다. 옛 소련 시절의 대재앙을 반대쪽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HBO와 영국의 Sky Atlantic이 공동 제작해 영어대사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검증 오류와 왜곡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재난을 포괄적이면서도 정밀하게 바라보는 강력한 연출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옛 소련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사건 발생 후 조사위원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조프의 탄식 같은 내레이션으로 포문을 연다.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좌절한 남성의 괴로운 신음 소리가 음산하게 흘러간다. 그는 어정쩡한 정의에 분노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다. 결국 마지막 방편을 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이제 2년 전인 1986년 그날로 돌아가 대재앙이 빚어낸 혼란스러운 풍경을 하나 둘 조명하기 시작한다. 1화는 일종의 재난 스릴러처럼 흐른다. 재난 영화의 거대한 볼거리는 없지만 순간순간 긴장을 풀지 못하는 세심한 상황 연출로 숨을 죽이게 한다.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방사능에 민감해져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엄청난 위력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기만한 정치가와 관리자는 거짓말을 하고 축소했다.
1편은 무지와 기만이 만든 재난의 지형을 묘사한다. 한밤중에 멀리 떨어진 아파트도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뒤 밝게 빛나는 거대한 원기둥이 하늘로 치솟는다. 일부 시민들은 밤하늘을 환히 비추는 불빛에 이끌려 불꽃 구경하듯 삼삼오오 모여 지켜본다. 그들 사이에서 방사능 재가 눈처럼 흩날릴 때 앞으로 일어날 예견된 비극을 모골이 읊조린다. 뿐만 아니라 별일 아닐 것이라는 듯 화재진압 현장으로 달려간 젊은 소방관은 예상과는 다른 현장의 모습에 충격을 받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그곳 소방대원들은 방호복도 없이 불길과 맞서며 각자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아비규환의 비극이 닥치기 직전 아무런 방어벽도 없이 방사능을 마주한 사람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부에 있다. 대재앙의 직접적 원인이 된 실험책임자 디트로프가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현실과 부조화를 일으킬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덮친다. 부하들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부하들을 사지로 내몬다. 피를 토해 얼굴이 화상으로 일그러져도 상황 인식 능력은 제로다. 게다가 긴급 소집된 회의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헛소리를 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말을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까. 1화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관료주의가 어떻게 초기 대응을 망쳤는지 내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2화는 초기 대응에 실패한 뒤 사고 수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령도시로 전락한 체르노빌의 비극과 영웅적 헌신을 그린다. 내레이션의 주인공 발레리 레가조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그와 점차 협력관계로 변해가는 옛 소련 부의장 보리스 셰르비나와 중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도시에 온 가상의 인물 울라나 코목이 등장한다. 이들이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정치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도시 풍경은 점점 삭막해진다. 병원은 피폭자들로 넘쳐나고 숲은 어떤 생명력도 감지되지 않으며 곧이어 수십 대의 버스 행렬이 도시 사람들을 외부로 실어 나르기 시작한다. 사고 수습을 위해 머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도시의 기능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고요한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을 때 영웅적인 시민은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치명적인 죽음의 발원지로 향한다.

배우들의 필사적인 연기도 탁월하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뼈아픈 비극적 실화를 재현하는 데 노련한 배우들을 기용해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시킨다. 영국 해군 탐험대의 실종 사건을 다룬 <더 테러>의 자레드 해리스가 또 실존 발레리를, 스웨덴의 유명인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소련 정치가를, <펀치 드렁크 러브>의 에밀리 왓슨이 가상의 인물이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울라나를 연기한다.
<체르노빌>의 엄숙한 긴장감은 이상하게도 현실적이다. 1986년에 일어난 사건인데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진짜 슬픈 게 조금 삐뚤어지면 우리 얘기야. 사건이 벌어진 옛 소련 내부에 잠입해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공간감도 훌륭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공감하는 권력층의 뻔뻔스럽고 참담한 모습에 더 격렬하게 빠져드는 것 같다. 건조하고 딱딱한 톤은 즉흥적인 재미가 부족하지만 연기도 연출도 여러모로 감탄사를 자아내는 드라마다.